[여적]레드 휘슬
중국에 ‘헤이샤오(黑哨)’라는 말이 있다. ‘검은 호루라기’라는 뜻이다. 주로 축구단이나 도박단의 검은 돈에 매수된 축구 심판을 일컫는다. 영어에는 없는 표현이지만, 중국식 영어 조어로는 ‘블랙 휘슬’이라고 한다. 중국에 루쥔(陸俊)이라는 유명한 축구 심판이 있었다. 한·일 월드컵 심판으로도 활약한 그는 TV 프로그램에 나와 프로축구 시합 녹화 영상을 보면서 잘못된 판정을 가려내는 판관 역할을 맡곤 했다. 그는 상하이 축구단에서 돈을 받고 편파 판정을 한 혐의로 지난해 2월 징역 5년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돈에 매수된 일부 심판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검은 호루라기가 남긴 슬픈 뒷모습이다.
중국과 달리 원래 검은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는 뜻의 ‘블랙 휘슬 블로어’나 ‘휘슬 블로어’는 내부 비리 제보자를 말한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회사에 비리가 있으면 수사당국이나 언론사에 제보를 하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1972년 당시 닉슨 대통령의 도청을 특종보도한 워터게이트 사건도 ‘딥 스로트’라고 불렀던 내부 제보자(훗날 당시 FBI 부국장으로 밝혀짐)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요즘은 ‘레드 휘슬’이 인기라고 한다. 레드 휘슬은 보안과 익명성을 보장하는 반부패 시스템으로, 현재 100개가 넘는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가 가입해 있다. 비리가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다. 제보자 인터넷 주소나 스마트폰을 역추적할 수 없도록 막아 제보자 안전을 보장해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부패방지법을 만들어 공공기관 내부 제보자를 보호한다고는 하지만, 신원이 드러나는 경우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레드 휘슬에 대한 기대는 한층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 30면2단(2013-06-12) / 홍인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