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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한수원 사장이 불고있는 비리경고 휘슬
2012-11-26

2012. 11. 26.자 조선일보 35면

[경제초점] 한수원 사장이 불고 있는 '비리 경고 휘슬'

'기술 전문직' 끼리 서로 눈감아주는 오랜 패거리 문화 깨려는 고육지책
노조·정치권 등 저항 거세지만 국민 안전 위해선 물러서면 안 돼

이광회 산업부장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국내 원자력 발전(發電)을 담당하는 공기업이다. 영광·고리·울진·월성 등 4곳에서 원전 23기를 가동하며 국내 총발전량의 31%를 담당한다. 요즘 한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팝업 창(窓)이 하나 뜬다. 명함 크기의 창인데 희한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비리(非理) 일제 자진 신고'. 지난 14일부터 27일까지 2주일 동안인데, 엄중 경고를 뜻하는 '레드휘슬(redwhistle)'이란 문구도 이채롭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다른 직원의 잘못까지 신고받고, 신고 사이트 서버는 아예 해외에 뒀다. 컴퓨터 IP 주소 추적을 차단하는 등 신고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줄 테니 비리만 제대로 알려 달라는 취지인 것이다.

'조직의 결속을 해칠 텐데, 꼭 이런 식으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간부 A씨로부터 한수원 내부 사정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9000명이 넘는 (한수원) 직원의 90%가 기술직입니다. 원전에는 부품 수만 개와 장비가 시시각각 투입됩니다. '안전' '기술'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같은 담당자가 20~30여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해 왔어요. 자기 일을 남이 알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죠. 끼리끼리 보살펴 주고, 눈감아 주는 패거리 문화도 깊고…." 간부 B씨는 "한수원 내부 비리는 시작일 뿐이며,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물은 고이면 썩는 법이다. 10년간 230여 품목, 7600여 제품의 원전 부품 검증서를 위조했다가 최근 적발된 사건도 기막힌 속내용이 한둘이 아니다. 부품 검증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내부 전산망 자료를 통하면 곧 파악돼야 정상이다. 하지만 한수원 시스템은 특정 부서와 담당자만 알고 있는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본부조차 원전 부품 업체가 몇 곳인지 모른다. "전산 조회로는 불가능했어요. 일일이 지난 서류를 꺼내 대조하는 수작업으로 가짜 검증서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죠." 간부 C씨 얘기다. 지난 5년간 납품 비리로 구속된 간부가 33명에 이른 것도 이런 고질병과 무관하지 않다.

'레드휘슬'을 통해 비리 척결에 나선 이는 김균섭 한수원 사장이다. 서울대 공대와 기술고시 출신인 전문 기술 관료인 데다 사무관 시절 원자력 국산화 업무를 담당한 경험자다. 한수원에 오기 전 두산엔진 대표,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을 거쳐 신성솔라에너지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한수원 사장직을 고사했지만 지식경제부의 요청을 받아 고민 끝에 수용했다고 한다.

그의 레드휘슬은 이유도 분명하고 지속 가능하게 추진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실험 단계이며 미완성 대책일 뿐이다. 앞날도 험난할 것이다. 이미 노조와 정치권, 원전 반대론자 등 안팎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올 초 9000여 직원 중 600여명을 다른 지역, 다른 부서로 배치하려 하자 노조위원장이 사퇴로 맞서는 등 거센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하지만 단 한 걸음, 아니 반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은 '한수원의 비리 구조를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원전의 안전 문제는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취임한 지 5개월째이니 임기는 2년 반 이상 남아 있다. 그는 중국 시인 도연명이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는 배경이 된 '오두미(五斗米)' 일화, 즉 "내 어찌 쌀 다섯 말 때문에 (하찮은 이에게) 허리를 꺾으리(我豈能爲五斗米折腰)"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가슴에 늘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는 그에게 딱 한 가지만 당부하려 한다. "재임 기간 내내 레드휘슬을 입에서 절대로 떼지 말라"고 말이다. 전 국민이 그와 한수원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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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25/2012112501301.html